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세미 슐트 (문단 편집) === [[종합격투기]] === 그 후 종합격투기로 진출하여 [[Pride]] 출전 등으로 격투기 무대에도 나서게 된다. 1996년 Pancrase 데뷔를 시작으로 종합격투기 무대에서 활약했는데, 아무래도 종합에는 잘 맞지 않았는지 승패를 반복하며 그저 그런 선수로 남았으나 1998부터 종합무대에 적응이 된 듯 연승을 거두며 일약 전성기를 맞게 된다. 이후 2000년을 기점으로 UFC와 PRIDE에 진출하여 종합격투기 선수로서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그가 최상위 강자들과 싸우기엔 모자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우월한 하드웨어로 중, 하위권은 잘 잡았으나, 그라운드가 몹시 취약해[* 특히 그라운드가 어느정도 보강되었던 시절인 프라이드 16, 쇼지 아키라와의 경기에서는 본인이 두들겨 패고 다운을 시켜도 파운딩은 일절 치지 않으려 했으며 쇼지가 누워서 도발을 해도 뒷걸음질을 하는 등 그라운드 공포증이 있는가 아닐 정도로 그래플링에 두려움을 보였다.] 톱급 파이터들에겐 거의 먹히지 않았기 때문. 그라운드에 대한 이해도 자체가 나쁜 편은 아니고 완력도 좋은 편이었지만, 거인 특유의 높은 중심과 둔한 움직임이 치명적이었다. 판크라스 시절은 그라운드 이해도 자체가 낮아 저체급의 일본 선수들에게도 잡혔었다. 오랜 시간 동안 조금씩 그라운드를 보강하면서 UFC 진출 이후에는 1승 1패를 기록했고, 당시 잘 나가던 PRIDE에 안착한 그는 초반에 3연승을 거두며[* 다만 3명 모두 전형적인 일본인 떡밥 파이터였다.] PRIDE에서도 입지를 굳히는 듯 했으나, 당시 Rings에서 막 이적해왔던 [[표도르 예멜리야넨코]]에게 3라운드 내내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관광을 당하고 만다. 그래도 탑 컨텐더로서의 주가는 있어 당시 챔피언이었던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에게 도전하나 여지없이 패배하고, 비슷한 급의 갠 맥기에게도 하위 그라운드 상태에서 여지없이 끌려다니다 겨우겨우 암바로 승리하는 모습은 종합격투기에서의 그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후 마지막으로 [[세르게이 하리토노프]]와 붙었으나, 그 유명한 김장을 담궈지는 굴욕[* 얼마나 피칠갑을 했는지 당시 방송이 흑백으로 송출되었을 정도이다.]을 겪은 후에 입식으로 전향했다. 그리고 [[K-1]]으로 전향 후 입식경기에서는 이 로봇을 과연 누가 이길지?라는 의문을 몇년 간 품게 만들 정도로 거의 최강의 포스를 보여주게 된다. K-1 재패 이후에도 간간히 MMA 경기에 나서서 클래스를 보여주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